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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재현된 세트장이 아니다. 진짜 감옥이었다.
1908년 문을 연 이후 광복의 그날까지, 붉은 벽돌 담장 안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끌려 들어왔다. 김구, 안창호, 한용운, 유관순, 강우규, 이재명. 교과서에서 만난 그 이름들이 이 담장 안에서 고문을 견뎠고, 적지 않은 이들이 끝내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옥사와 사형장은 그날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복원된 여옥사에는 유관순 열사가 갇혀 있던 8호 감방이 있다. 1920년 3월 1일, 유관순과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 1주년을 맞아 이 좁은 감방 안에서 다시 만세를 불렀다. 감옥은 그들을 가뒀지만, 그 목소리까지 가두지는 못했다.
사형장 옆 담장 아래에는 작은 통로 하나가 복원되어 있다. 이름은 '시구문'. 고문과 처형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몰래 실어 내보내던 문이다. 일제가 만행을 끝까지 숨기려 했던 그 문이, 백 년이 지난 지금, 그 지옥의 가장 또렷한 증거가 되어 남았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걸음이 달라지는 곳.
서울 다크투어가 서대문형무소를 빼놓고 시작될 수 없는 이유다.

1919년 3월 1일,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원래 독립선언식이 열리기로 한 장소는 탑골공원이었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은 일제와의 충돌로 시민들이 희생될 것을 우려해, 선언 장소를 인사동 태화관으로 조용히 옮겼다. 문제는 그 소식이 미처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 약속된 시간,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탑골공원으로 모여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민족대표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술렁이는 군중. 이대로 흩어지면 끝이었다.
그때, 한 청년이 팔각정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품에서 독립선언서를 꺼내 읽어 내려간 청년, 정재용이었다. 낭독이 끝나는 순간 만세 소리가 터졌고, 군중은 공원 문을 밀고 거리로 쏟아져 나갔다. 역사에 기록된 그 함성은, 자칫 시작조차 못 할 뻔했던 순간을 한 청년의 목소리가 바꿔낸 결과였다.
그날 탑골공원에서 터진 함성은 전국으로, 국경 너머로 번졌다. 그리고 그 함성을 처음 들었던 팔각정은, 지금도 공원 한가운데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함성의 시작점이자 3.1운동의 랜드마크. 그곳이 탑골공원이다.

1932년 1월 8일, 도쿄 한복판. 일왕의 마차 행렬을 향해 수류탄 하나가 날아들었다.
던진 사람은 서른두 살의 이봉창.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었다. 폭탄은 빗나갔지만 그 폭음은 일본의 심장부를 뒤흔들었고, 식어가던 독립운동에 다시 불을 붙였다. 거사 전 김구를 안심시키며 활짝 웃던 그의 얼굴은, 지금도 우리가 아는 가장 뜨거운 미소로 남아 있다.
이봉창은 용산 토박이였다. 원효로에서 태어나 효창동에서 자랐고, 용산역에서 역무원으로 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살았던 집터 바로 곁에, 2020년 한옥으로 지은 기념관 '이봉창 역사울림관'이 문을 열었다.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에서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 그런데도 이곳을 아는 사람은 놀랄 만큼 적다.
기념관에서 800m를 걸으면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이 나온다. 광복 이듬해 김구가 일본에서 직접 봉환해 온 이봉창 의사의 유해가 그곳에 잠들어 있다. 태어난 동네에서 걸어서 10분, 그는 삼의사 가운데 유일하게 고향으로 돌아와 묻혔다.
용산에서 나고 자라, 끝내 용산으로 돌아온 사람. 그 일생을 한 동네 안에서 걸어서 만날 수 있는 곳, 이곳이 이봉창 역사울림관이다.

이번엔 기념관도, 박물관도 아니다.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길바닥 위다.
종로3가 단성사 앞. 우리나라 첫 영화관이 서 있던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 파조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1926년 6월 10일 아침, 마지막 황제 순종의 상여가 창덕궁 돈화문을 나와 이 다리 앞에 이르렀다. 길가에는 수만 명의 학생과 시민이 도열해 있었고, 그 사이사이 일본 군경 수천 명이 총검을 세운 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중앙고보 학생 이선호가 대열을 박차고 길 한가운데로 뛰어나왔다. "조선독립만세!" 그 외침을 신호로 학생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뿌렸고, 함성은 관수교로, 동대문으로, 청량리까지 번져 나갔다. 총검이 겹겹이 둘러싼 감시망 한복판에서 터진 이 외침이 바로 3.1운동을 잇는 두 번째 대규모 만세운동, 6.10만세운동의 시작이었다.
지금 다리는 사라졌다. 지금 그 자리에는 번화한 길목 한켠, 무릎 아래 높이의 표지석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매일 수천 명이 그 앞을 지나지만 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사는 유리 진열장 안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오늘 걷는 길이 백 년 전 누군가 목숨을 걸고 뛰쳐나온 바로 그 길이다. 지도를 들고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오가는 명동성당 앞. 쇼핑 인파로 붐비는 길모퉁이에 낮은 표지석 하나가 서 있다. 대부분은 그 앞에 무엇이 있었는지 모른 채 지나간다.
1909년 12월 22일, 이 자리에서 한 청년이 군밤장수로 변장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에서 열린 벨기에 황제 추도식이 끝나고 인력거 한 대가 문을 나섰다. 을사늑약에 앞장선 매국의 상징, 이완용이었다. 청년 이재명은 품에 숨겨 온 칼을 꺼내 이완용을 찔렀다. 이완용은 중상을 입었고, 이재명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됐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그가 남긴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나의 생명은 빼앗아도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며, 죽어서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언이었다. 1910년 9월 30일, 그는 스물넷의 나이로 순국했다. 조선총독부가 문을 여는 바로 전날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 한복판에, 가장 뜨거웠던 청년의 자리가 이렇게 남아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이 지도를 만든 이유다. 서대문형무소에서 탑골공원으로, 효창동에서 종로를 지나 명동까지. 서울 곳곳에는 이런 자리들이 흩어져 있다. 어떤 곳은 박물관이 되었고, 어떤 곳은 표지석 하나로, 어떤 곳은 아무 표시 없이 그저 길이 되었다. 지도 한 장을 들고 걷는 순간, 늘 다니던 서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걸은 만큼 기억되는 법,
일상 속 기억의 걸음을 다크투어 지도와 함께 시작해보자.















안녕하세요.저는 지난 18년간 박물관, 사적지, 그리고 거리 위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과 역사를 나누어 온
역사해설가 안지영입니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늘 느낀 건,
“역사에 관심은 있지만, 정작 만날 기회가 너무 적다”는 사실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특별한 기념일이나 단발성 투어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가볍게 역사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죠.
그래서 저는 매년
새로운 테마의 다크투어 코스를 개발하고,
참여자들이 직접 발로 걸으며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내 독립운동 유적만 해도
표지석까지 100곳이 넘는데, 정보가 흩어져 있다 보니
“이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는 반응이 늘 나왔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주머니에서 꺼내 펼치고, 원하는 만큼 걸을 수 있는
‘산책형 다크투어 지도’를 만들자고요.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서울 다크투어80 프로젝트가 탄생했죠.

그래서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기억을 보존하고 현장에서 되살리는
역사 펀딩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서울 다크투어 80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숨겨진 흔적 80곳을 한눈에 담은 지도와,
태극기의 변천과 의미를 담은 굿즈(엽서·스티커·키링)로 구성했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여러분이 단순한 ‘역사의 목격자’를 넘어 ‘기억의 수호자’가 되길 바랍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태극기 6종>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져 있으며, 고종이 미국인 외교고문 오웬 N. 데니에게 하사한 것입니다.
2. 불원복 태극기
'광복이 멀지 않아 돌아올 것이다'라는 뜻의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글씨가 적힌 태극기입니다.
3. 동의단지회 혈서 태극기
1909년 2월 연해주에서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12인의 동의단지회 회원들이 왼손 약지를 잘라 그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를 쓴 태극기 입니다.
4. 진관사 태극기
1919년 3.1운동 당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로, 2009년 서울 진관사에서 발견되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5. 김구 서명문 태극기
제작 연대가 확실한 유일한 태극기로, 백범 김구 선생의 서명과 독립 의지를 담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6.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한국 광복군 대원 70명의 서명이 담긴 태극기로, 광복에 대한 기쁨과 독립국가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스페셜 오프라인 투어 안내
1. 투어 코스 (약 180분)
서울역사박물관 앞 출발 → 경교장 → 홍난파 가옥 → 베델 집 터 → 이회영 기념관 → 딜쿠샤
2. 투어 일정
세부 옵션에 기재된 일정 중 참여 가능한 일정 택1 (10월 주말,공휴일 일정으로 8회 구성)
3. 예약 방법
펀딩 참여로 날짜 지정 예약 완료, 추후 일정 변경은 투어 진행 최소 1주 전 히스토리안 사전 연락으로 1회에 한해 가능 (단, 경조사 및 질병 등 사유는 협의 변경 가능)
4. 포함 구성
역사해설사 안지영의 5만원 상당 스페셜 다크투어 + 특별 굿즈
5. 투어권 타인 양도 가능 여부
타인 양도 가능 (단, 성인만 참여 가능)
6. 신청한 일정이 맞지 않는다면?
스페셜 투어권 구매자 중 구매한 투어 일정과 1회 변경한 일정에도 참여하지 못한 경우, 매달 진행되는 히스토리안의 다른 도슨트 투어로 대체 참여 가능. (2027.4.30까지 적용)
왜 다시, 와디즈 인가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걸으며 교훈을 얻는 여행입니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장소들을 찾아가 그날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시간이지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의미 있는 활동입니다.
사실 이런 콘텐츠는 기존 유통 방식으로는 세상에 나오기 어렵습니다. 서울의 다크투어 장소들을 한 장의 지도에 담고, 오디오 도슨트와 자료집까지 엮어내는 작업은 "이게 팔릴까?"라는 질문 앞에서 늘 멈춰 서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와디즈에서는 달랐습니다. 새로운 시도의 '가치'를 먼저 알아봐 주는 서포터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진행한 첫 펀딩 '서울 다크투어80 지도'는 목표를 훌쩍 넘겨 성공했고, "정말 늘 생각해오던 프로젝트였다", "덕분에 광복절이 다르게 느껴졌다"는 후기들이 이어졌습니다. 앵콜 요청도 꾸준히 받았습니다. 그 응원이 있었기에 올해 광복절, 더 단단해진 구성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와디즈는 만드는 사람과 응원하는 사람이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해가는 공간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더 멀리 갈 수 있으니까요. 이번 앵콜 펀딩 역시, 이 여정에 기꺼이 동행해 주실 서포터분들과 함께하고 싶어 와디즈를 다시 찾았습니다.
히스토리안